예술, 기억, 공동체를 되묻다
2025년 열린 임민욱 작가의 개인전 '하이퍼 옐로우(Hyper Yellow)'는 지난 30여 년간의 작업 세계를 돌아보며, 예술이 사회적 실천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탐색하는 전시입니다. 비디오, 퍼포먼스, 조각,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회적 현실과 기억의 층위를 담아온 임민욱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한 번 예술의 본질과 그것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정치성과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예술
임민욱 작가는 한국 사회의 근현대사, 도시화, 재개발과 같은 현실 문제를 예술적으로 풀어내며 정치적, 행동주의적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왔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뉴 타운 고스트에서는 도시 재개발의 폐허가 된 장소를 배경으로 공동체의 희로애락을 다룬 노래를 들려주며, 버려진 사물을 활용한 포터블 키퍼 시리즈에서는 잊힌 역사와 감정을 짊어진 인간의 여정을 조형적으로 구현합니다.
이처럼 임민욱의 작업은 단순한 비판이나 기록을 넘어서, 현실에 대한 감각적인 응답을 시도하며 관람자에게도 참여를 유도합니다. 특히 2000년대 후반부터는 퍼포먼스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특정 장소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을 다층적으로 풀어냅니다.
이동과 만남의 미학
그의 예술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이동’입니다. 폐허가 된 장소, 접근이 금지된 공간, 잊혀진 역사적 현장을 향한 이동은 우연한 만남과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이를 통해 무관해 보이는 사물, 인물, 기억 사이에서 공통의 감각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S.O.S-채택된 불일치에서는 관람객이 유람선을 타고 한강을 따라 이동하면서, 학생 시위, 연인의 배회, 비전향 장기수의 독백이라는 세 가지 사건을 마주하게 합니다. 또한 손의 무게에서는 관광버스를 타고 내린 사람들이 통제된 건설현장에 침입하는 과정을 열감지 카메라로 기록합니다. 이는 감시와 통제의 시선 속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저항의 움직임을 시적으로 포착한 작업입니다.
공동체, 기억, 그리고 환대의 역설
임민욱의 예술은 ‘공동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집니다. 그가 바라보는 공동체는 환대와 관계, 연대 같은 이상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대신 그는 기억과 망각, 치유와 폭력이 교차하는 시간의 작용을 통해 공동체의 모순된 속성을 드러냅니다.
연극적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 불의 절벽 2에서는 고문 생존자가 정신과 의사와 대화를 나누며, 권력에 침탈당한 개인의 삶을 되짚습니다. 이는 웅변적인 언어보다, 미지근한 침묵의 수어에 가까운 방식으로 관람자에게 다가가며 기존 인식에 전환을 불러일으킵니다.
매체와 도구를 향한 자문
'하이퍼 옐로우'는 임민욱 작가 스스로의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나는 왜 붓을 드는가? 왜 사진기를 드는가? 왜 사람의 말을 듣고 그 말을 사용하는가?" 이와 같은 자기반성은 그가 사용하는 모든 매체와 도구가 단순한 선택이 아닌 예술의 본질을 탐색하는 방편임을 시사합니다.
그의 작업에서 비디오 아트, 설치미술, 회화, 드로잉, 조각, 퍼포먼스는 단지 표현 수단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던지는 질문에 반응하는 감각적 경로로 작동합니다. 특히 미술이 지닌 지시성과 상징성, 아름다움의 기능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며, 미술가로서의 책임과 가능성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꾸밈과 장식, 그리고 의례로서의 미술
임민욱은 ‘꾸밈’과 ‘장식’을 현대미술이 버려야 할 과거의 잔재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장식을 통해 의례적인 힘을 빌려 삶을 보완하는 방식으로서 예술을 제안합니다.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동시대의 취약한 것들을 보듬고, 공예적 정성과 예술적 감각으로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임민욱의 비전입니다.
그의 예술은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거나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실의 비전과 미학적 완결이 만나는 지점을 통과합니다. 이는 그가 예술을 통해 진실, 아름다움, 공동체, 기억이라는 난해한 개념들을 다시 구성하고 재해석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무리하며
임민욱 개인전 '하이퍼 옐로우'는 과거의 작업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예술이 향후 나아갈 방향을 깊이 있게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이 전시는 작가의 시선과 철학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역사, 공동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예술은 때로 침묵처럼 미지근하고, 때로 눈앞의 현실보다 더 감각적이며, 언제나 그 본질을 되묻는 행위입니다. '하이퍼 옐로우'는 그러한 예술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