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아보카도에 관한 명상
세상에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있고, 진짜였으나 이제는 진짜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아보카도는 그 어느 쪽이었을까요?. 유기적인 곡선과 기름진 질감을 가진 그 열매는 한때 자연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시의 아보카도는, 정확히 말해 플라스틱 아보카도는 그 본질을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롱이고, 찬사이며, 기념이고, 경고입니다.
최인호 작가가 바라본 아보카도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플라스틱이라는 인공의 물질을 빌려 자연을 가장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장은 의외로 정직합니다. 나는 진짜가 아니야 하고 말하는 듯, 반들거리는 표면과 딱딱한 감촉은 관람자에게 진실을 감춘 채 은근한 고백을 건네옵니다. 최인호작가 식으로 말하자면, “거짓이 진실을 대신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실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일 것입니다.
아보카도는 그 자체로 상징입니다. 건강, 풍요, 힙스터 문화의 은밀한 엠블럼. 그러나 이 전시에서 우리는 그 익숙한 상징을 의심하게 됩니다. 색은 똑같고, 크기도 같다. 하지만 무게가 다르고, 냄새가 없습니다. 플라스틱의 침묵 속에 갇힌 그 열매는 무언가를 말하려 합니다. 자연은 재현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점점 더 '진짜인 듯한 가짜'로 대체되어 간다는 사실이라는것을 알아가게 해주는것이 조금 슬프기도 합니다.
작품 중 일부는 절단된 형태로 제시됩니다. 속살이 드러난 단면에서는 씨앗 대신 작은 전자 칩이나 인공 구조물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재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경계선입니다. 유기체와 기계, 생명과 무생명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우리의 현재를, 작가는 정적 속에 그려내고 있습니다.
전시장을 걸으며 문득 이런 상상이 스쳐갑니다. 만약 언젠가 진짜 아보카도가 멸종하고, 이 플라스틱 복제품만이 박물관 속에 남게 된다면, 미래의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자연이라고 부르지 않을까요? 이것은 SF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입니다. 플라스틱 아보카도는 그래서 예언서라고 할수 있습니다. 말 없는 열매는 침묵으로 우리에게 “너는 진짜를 기억하니?”라고 묻습니다.
최인호 작가의 메시지
최인호 작가는 늘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았습니다. 화려함 속의 허무, 일상 속의 비극, 익숙한 것들의 낯섦. Plastic Avocado이 전시 역시 그러합니다. 플라스틱이라는 차가운 물질을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한 뜨거운 질문을 던지는 이 전시는, 어쩌면 그가 좋아했을 문장 하나로 요약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대개 조용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가장 크게 울린다.”
[화인페이퍼갤러리 - 홈]
연남동에 위치한 전시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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